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최첨단 무기를 온 몸에 장착하고 전설의 13:1도 한 주먹이면 거뜬한 수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상의 설정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특유의 쾌감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게다가 정체를 숨기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채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그들의 비밀스러움은 "어쩌면~"이라는 환상까지 더해 어린시절에는 나도 그들처럼 정의감에 넘치는 이가 되리라는 꿈을, 성인이 되어서는 어쩐지 잃어버린듯한 어린시절의 환상과 순수함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어 나름의 즐거움을 가진다. 물론 정의감으로 똘똘뭉친 정의의 사도인 슈퍼히어로라면 말이다.
킥 애스는 그런 의미로 본다면 다소 당황스러운 영화이다.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최첨단 무기나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수퍼히어로가 아니라 그저 단순한 발상 하나를 가지고 순진한 소년의 치기를 무기삼아 "그냥 한번 해보는" 슈퍼히어로질에 의의를 둔 찌질남이 주인공이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영화를 주도하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다른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설정을 가진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맺힌 한을 풀기위해 살인병기로 키워진 11살 소녀가 그 주인공이니 말이다.
영화의 타이들이 되는 킥 애스이자 데이브는 정작 아무런 능력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동네 양아치들에게 삥뜯기고 학교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찌질이이다. 이에 반해 이제 갓 11살이 된 민디는 생일선물로 칼과 총을 받고 싶어하고 13:1이 아니라 그 이상의 장정들에게 한 순간에 총질을 하고 목을 잘라버리는 단연 이 영화 최고의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인물. 데이브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영웅이 되고 싶어하고, 민디는 인생을 걸고서라도 해내야하는 단 하나의 숙제가 있기에 영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데이브는 영웅은 아니지만 영웅의 순수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고, 민디는 영웅의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정의감 보다는 복수심에 불타는 살인병기일 뿐이다. 사실 이러한 설정은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가 적응 안되고 당황스러운 이 영화만이 요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아이가 선보이는 그 어른 못지 않은 화려한 액션이 너무도 신선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부분이 되기도 한다. 또 이 11살의 여자 아이가 액션을 펼칠때 울려퍼지는 경쾌하고 발랄한 음악까지 더해져 흥겨움까지 배가시키니.. 이 영화... 한마디로 볼만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킥 애스에는 타고난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는 자신도 슈퍼 히어로가 되어보고 싶다는 단순한 갈망에서, 누군가는 피맺힌 원한에서, 누군가는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들의 세상에 끼어들기 위해서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미 어느정도 안정된 궤도에 올라선 어른들의 영웅이 아니라 언제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뛰고 달릴 수 있는 청소년들이 영웅이 되어 나타난다. 누군가를 위해 혹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용기와 무모함은 어른이 되면 점점 사라진다는 다소 씁쓸한 면모를 담아서 말이다. 완전히 자라지 않은 아이들만의 순수함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것이 다소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만큼 거리낌없이 혹은 자극적으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한방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한것 같다.
킥 애스이자 데이브 역할은 일루셔니스트와 상하이 나이츠 등에서 아역스타로 인기를 모았던 만 20세에 23살 연상녀와 아이까지 둔 유부남 아론 존슨이, 11살 살인병기 민디 역에는 크로 모레츠가, 그리고 민디에게 유년시절 대신 복수심을 심어주고 자신과 아내의 복수를 위해 그녀를 살인병기로 훈련시키는 혹독한 아빠 데이먼 역에는 케서방 니콜라스 케이지가, 마지막으로 어른들의 세상에 끼어들기 위해 다소 위험한 무리수를 두는 갱단 두목의 아들 크리스 역에는 크리스토퍼 민츠가 출연한다.
왓치맨 역시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진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정의감에 불타올라 악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절대 선의 존재로 그려지던 슈퍼 히어로들을 한때는 영웅으로, 이제는 사라져야 할 적의의 대상으로 몰아붙이는 시대의 변화를 이면에 배경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왓치맨은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나타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아니라 국가의 통제 아래 필요한 곳에만 투입되는 특수부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해주던 왓치맨을 어느새 자신들을 감시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이제 왓치맨들은 세상을 감시하고 지키는 이들이 아니라 감시 당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왓치맨의 영웅들은 어딘가 묘한 비틀림들을 가지고 있다. 영웅의 삶을 선택하기 보다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 살아가고 있고 그조차도 늘 불안하고 불만에 가득차 있는 비딱한 시선을 가진 과거의 영웅들. 그래서 왓치맨은 생동감 있고 아름다운 환상을 이야기하는 영웅담이 아닌 어딘지 모르게 뒤틀린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더 집중한다.
킥 애스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면 왓치맨은 이미 영웅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버려진 영웅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왓치맨들이 싸우는 적은 세상을 위협하는 악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그 세상이다. 자신들을 통제하고 자신들을 불필요하게 여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너무도 확실히 존재하는 바로 그 힘 말이다. 평범한 인간에서 영웅이 되기 위해 고분분투 하는 데이브와 크리스의 킥 애스가 그 잔혹성에도 시종일관 웃음을 선물하는것에 반해, 이름부터 코미디언인 배역이 있는 영웅들의 이야기 왓치맨이 더욱 진지하고 수 없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어려운 영화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왓치맨에는 총 6인의 왓치맨들이 등장하지만 주요 사건들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네명의 남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끌어가며 진실을 파헤치는데 집요함을 보이는 로어쉐크 역에는 젝키 얼 헤일리가, 늘 건성건성 냉소적이고 동시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코미디언 역에는 제프리 딘 모건이, 영화 안에서 다소 충격적인 노출신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하는 닥터 맨하탄 역에는 빌리 크루덥이 그리고 선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오지맨 디아스 역에는 매튜 굿이 출연한다.
제프리 딘 모건 |
하비에르 바르뎀 |
제라드 버틀러 |
로버트다우니주니어 |
개인적으로 왓치맨을 보면서 다소 당혹스러웠던 점은 코미디언역으로 출연했던 제프리 딘 모건을 한동안 제라드 버틀러와 알았다는 것. 나중에 게다가 그 한참 후에는 하비에르 바르뎀과도 구분이 안되어 누군지 모두 제라드 버틀러라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슷한 느낌을 주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까지 가세해 4명의 배우를 볼때마다 포스터에 이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이다. ㅠㅜ
술 마시느라 악의 무리가 활개를 쳐도 뒤늦게 음주비행으로 늑장 출동하고, 무식하게 힘으로 착륙해서 도로고 집이고 깨부시는 통해 슈퍼 히어로임에도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문제아 핸콕. 움직이면 사고치는 사고뭉치인지라 이미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에서도 밀려난지 오래이지만 여기저기 부딪히고 깨부수는 통에 이미 도시에서도 골치거리가 된지 오래가 된 대상이기도 하다. 영웅이 영웅 대접 받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특별히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PR전문가를 통해 이미지 쇄신을 기하는 핸콕. 그가 PR전문가 레이를 만난 후 사람들이 가지는 핸콕에 대한 이미지는 조금씩 나아지지만 핸콕이 가지는 초인적인 힘은 상대적으로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핸콕은 킥 애스나 왓치맨이 조금은 불완전한 영웅들을 그리고 있는 것에 반해 선천적인 조건상으로는 거의 완벽한 영웅을 소재로 한다. 엑스맨처럼 태어날때부터 영웅으로 선택된 선천적 영웅. 하지만 성격상으로는 가장 하자투성이인 핸콕은 그래서 킥 애스의 코믹적인 부분과 왓치맨의 약간 뒤틀린 시각을 동시에 겸하고 있다. 또 여기에 코믹적인 요소가 가장 강하게 더해진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3영화중에서는 유일하게 청소년 관람가이기도 하고 말이다. 정의감에 불타올라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영웅이 아닌 자기멋대로 술마시고 노래하는 자유를 가진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핸콕. 그리고 그래서 더욱 자연스럽고 유쾌한 핸콕의 진짜 영웅되기라는 점에서는 어린 아이가 영웅이 되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킥 애스와 조금 더 닮은 영화라고 볼 수 도 있겠다.
하자많은 영웅 핸콕역에는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의 사랑을 받이 받는 배우 윌 스미스가, 그리고 그의 힘에 대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비밀의 여인 메리 역에는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했다.
킥 애스와 왓치맨, 그리고 핸콕 3영화는 모두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이다. 후천적이거나 혹은 선천적으로 만들어진 다수의 슈퍼 히어로들은 원래의 슈퍼 히어로 무비라면 정의감에 불타올라 악의 무리를 소탕해야하는 전형적인 역할들이 주어져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어쩐 일인지 이 세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한 두 곳쯤은 부족한 혹은 뒤틀린 면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부족한 부분들이, 때로는 영웅들을 바라보는 뒤틀린 시선이, 또 혹은 삐딱하게 꼬인 성격이 각각의 개성을 만드는 이 영화들은 그래서 그 불완전함이 매력이고 더욱 인간적으로 그들을 보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슈퍼 히어로는 분명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대상들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말이다.) 하지만 때문에 지극히 특에 박힌 이미지와 역할들만을 강요하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세상이 변하고 다양한 관념들이 세상에 넘쳐나면서 슈퍼 히어로 영화들도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은 그래서 세상이 변하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했으니 슈퍼 히어로들도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야 하니 말이다.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여 살아야 할 슈퍼 히어로들이 점점 인간적인 면모들을 갖추고 현실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그래서 반가운 부분이기도 하다. 슈퍼 히어로들이 이렇게 땅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를 도와줄 영웅의 존재도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