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든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카드는 The Fool이다.
덱마다 조금은 다른 모습과 조금은 다른 분위기로 만나게 되는 The Fool이지만  문가든의 The Fool은 콕 찝어 광대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왜 하필이면 광대일까?

광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즐거움을 선사하는 직업이다.
굳이 현대의 직업군을 들어 설명하자면 예능인..그러니까.. 연예인쯤? 
삐에로라고도 불리우는 이 직업은 원래는 궁정시대에 왕의 옆에서 비서같은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왕을 위해 즐거움을 선사하고 시중을 들고.. 왕의 남자에 나오는 공길처럼..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공길같은 경우가 드물었겠지만..)

왕의 가장 측근 중 하나 였지만
때문에 왕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하면 눈 앞에서 처형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그런 존재였다고 한다.  

웃음을 팔아 목숨을 연명하는 삐에로는 그래서 늘 불안하지만 즐거워 해야하고 그 즐거움을 타인에게 전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이중성 앞에 놓인 존재이기도 했다. 
이건.. 그저 광대라는 직업의 역사적 배경일 뿐이지만 광대의 웃음이 얼마나 절박하고 처절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가든의 The Fool은 단어 그대로는 바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광대인 그가 그대로 바보라고 할 수는 없다.
광대의 이미지 아래에 박힌 The Fool이라는 단어는 타인이 광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가깝다. 그리고 때로는 광대가 세상의 사람들을 보는 시선일수도 있다. 
하염없이 웃기만 하고 늘 즐겁기만 한 광대는 다른이의 눈에는 어쩌면 바보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돌을 던지고 비아냥 대어도 마냥 웃기만 하니 바보처럼 보이는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대로 광대의 눈에 그들은 어떻게 보일까? 광대는 그가 전하는 웃음과 즐거움에 힘겨운 일상을 잊고 웃고 떠들며 즐거워 하는 그들이 오히려 단순해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순히 그가 준비하고 연출한 것들만을 집중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가 의도한 대로 웃음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안에 처절한 고통과 두려움을 품고 살아가는 광대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바보스러움으로 느껴질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작은 손 동작 하나,
시덥잖은 농담 한줄에 세상사를 잊어버리는 그들이 얼마나 바보스러워 보일것인가.. 
그래서 광대는 언제고 자신의 삶을 탈출하고 싶어한다.
자신을 바보라 말하는 바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라는 노래를 알고 있는가?
리쌍이라는 가수가 부른 그 노래처럼 광대의 일생은 웃어도 웃는게 아니다. 
광대는 평생을 웃어야만 하기에 그의 웃음은 웃음일 수 없다.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위에 서 있다.

문 가든 속의 그는 아직 어려보인다.
어린나이에 삶이라는 모순을 일찍 알아버린 그는, 그런 그 자신의 삶이 진저리 나도록 싫어졌을것이다. 

그래서 두개의 달이 뜨는 어느날 밤에 광대의 탈출이 감행된다. 
두개의 달이 떠 있는 날의 밤, 광대는 자신의 운명 위에서 이탈한다.
서태지의 노래중 시대유감이라는 곡이 있다.
그 곡의 마지막 부분에 두개의 달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는 구절이 있다.
“바로 오늘이 두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이라는 소절이 바로 그 부분이다.  이 노래에서 두개의 달은 이제껏 세상을 얽매어 놓은 가식을 벗어던질 수 있는 기회의 날이자 현실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날이기에 이상으로 날아갈 수 있는 꿈같은 시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현실이 가득한 날의 밤에, 광대는 자신의 현실을 벗어던지고 비현실의 세상 속으로 뛰어들고자 한다.

문가든의 The Fool에서 뜬 두개의 달도
광대에게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데 그동안 자신속의 자아를 가두어 두었던 가식을 벗어던지고 꿈을 향해 지금의 자신을 벗어던질 수 있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의 날을 의미하는것이다. 

그런데 광대는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자신이 광대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복장과 분장을 채 지우지도 않고 그는 삶을 성급히 벗어난다. 막연히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충동적으로 도망한것일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충동적으로 도망한것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가장 바래왔던 것만은 해내고야 말았다. 광대의 얼굴 분장에서 웃고 있는 입술 그림이 지워져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이제 광대는 진정 스스로 미소 지을때에, 그리고 스스로가 원할때 웃을 수 있다.

 눈물을 흘려도 웃고 있어야 하는, 어쩌면 스스로가 가장 경멸했을지도 모르는 그 분장이 지워져 있으니까... 광대는 자신의 얼굴에서 웃음을 지워냄으로써 자신도 울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지각과 감정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로 가장 무거웠던 굴레를 벗어 던진것이다.

그는 도망했다..
광대는 이제부터 광대가 아닌 도망자이다. 
그는 웃음만을 위해 살았기에 아직 아무것도 할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 본 적이 없기에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위에 서 있는것이다.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는 새로운 지식을 위해 책상 앞에 앉을 수도 있고 부를 축척하기 위해 장사를 시작할수도 있으며 어쩌면 과거의 삶이 주었던 익숙함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무엇이든 가능한 지점에 서 있다.

그가 발을 딛고 있는 산의 꼭대기에선
이 모든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는 넓은 시야가 보장된다. 
그는 도망자이기에 이곳에서 오래 머물수는 없다. 무엇이든 결정을 내려야 하고 어느 방향이든 선택을 해서 시작해야할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시작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금은 불안하지만 균형을 유지하며 모든 가능성을 검토할 여유를 가져본다..

광대의 인생은 이제 제2막을 열어간다.

떤 선택을 해도 그에게는 희망과 가능성이 있다. 그가 과거로의 회귀를 선택한다 해도 그것은 정지가 아니라 성장이다.  다시 돌아간 그는 이미 자유의 냄새를 잠깐이나마 알게 되었고 벗어던진 굴레의 무게도 알아버렸다. 다시 광대로 돌아간다 해도 이전의 광대보다 더 자유롭고 더 넓은 새로운 광대가 되는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 광대처럼 못견디게 힘들고 못견디게 무거운 삶의 굴레가 느껴지는 시점이 있다. 
산꼭대기나 절벽 위에서 위태롭고 균형을 잡고 서 있지만, 그 균형이 너무도 위태로워 시시각각 공포가 몰려오는..그래서 자꾸만 조급해지고, 자꾸만 성급해지는 바로 그런 순간이...

그리고 그 순간, 어떤이들은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그저 나의 무게만큼 지고 그저 묵묵히 살아가기도 하며 어떤 이들을 일탈을 꿈꾸고 탈출하기도 한다. 이제껏 살아왔던 삶에서의 이탈은 아무것도 없는 無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떤것도 시작할 수 있는 無를 의미하기도 하다. 

결정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렇듯 당신 자신에게 있다.
인생의 제2막을 마주하는 당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무것도 없는 無의 한계를 인식하고 공포스러운 무모한 이탈 대신 현재의 익숙함을 택할것인가? 
아니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無를 선택하여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것인가? 
어떤것이든 그 순간에는 옳다 그르다의 판단은 할 수 없지 않을까?

단지 당신이 선택한것에 후회가 없도록 앞으로가 중요할 뿐이다..

어떤것이든.. 결정을 내리지 않고는 결과를 알 수 없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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